전북 군산시 서편 비응항 남쪽으로 쭉 뻗어 있는 왕복 4차로 도로를 내달렸다. 33.9km 세계 최장 새만금 방조제 위에 놓인 길이다. 앞으로는 고군산군도를 이루는 섬들이 어렴풋이 보이고 좌우 차창 밖으로 끝없는 바다와 벌판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 사업으로 불려온 새만금 개발 현장이다.

새만금 사업은 프랑스 파리시 면적 4배에 달하는 군산·김제·부안 일대 409㎢를 간척해 토지 291㎢와 담수호 118㎢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1960년대 말 식량안보 차원에서 처음 구상했다. 1991년 나온 첫 사업시행 계획은 '100% 농수산중심개발'로 농업식량생산기지를 조성하는 것이었지만 이후 6차례 계획이 바뀌며 오늘날 경제와 관광을 아우르는 '복합 개발'이 진행 중이다.

▲새만금 방조제 왕복 4차로
 

바다 메워 만든 200만 평 땅에 "수변 도시"


고군산군도 연결도로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 10분쯤 더 들어가자 눈앞에 6.6㎢(약200만 평) 규모 광활한 '공터'가 드러났다. 지난해 6월 매립을 마친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용지다. 2026년 7월 완공을 목표로 1단계 2.73㎢ 구역에 도로와 상하수도, 전기·통신 시설 등 기반시설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새만금개발청은 바다를 메워 만든 이 땅을 최대 4만 명이 정주하는 '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주거와 상업시설을 우선 유치한 뒤 장차 호텔과 카지노 등 대규모 위락시설까지 들이겠다는 거다. 현재 조성 중인 1단계 구역부터 올해 10월 분양에 들어갈 예정이다.

1단계 구역 조성공사 공정률은 현재 약 3% 수준. 관건은 '안전'이다. 매립지인 만큼 수분 가득한 연약지반을 안정화하는 게 핵심이다. 수변도시 용지 위로 거대한 타공 중장비 두 대가 보였다. 지반에 구멍을 뚫어 물기를 빼내는 일명 PBD공법에 쓰는 장비란 설명이다. 현장 관계자는 "수변도시 전체 9만 5천 곳을 목표로 하루 200개꼴로 구멍을 뚫어 연약지반처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조성공사 현장
 

2년 새 10.1조 투자 유치…기업들 "땅이 모자란다"


국토 서남쪽 끝 외진 땅에 사람이 모여들게 하는 건 기업이다. 방조제 북단 동편, 군산국가산단 남쪽엔 2008년부터 여의도 6배 크기(18.5㎢)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현재 도레이첨단소재, 천보비엘에스 등 28개 기업이 입주해 공장을 가동 중이고 에코앤드림, 성일하이텍 등 21개 기업이 착공에 들어간 상태다. LG화학과 SK온 등 굴지 기업들도 관심을 보여 최근 2년 사이 새만금청이 유치한 투자만 10조 1,000억 원 규모다. 땅을 조성해놔도 입주하겠다는 기업이 없어 애를 먹던 게 언제냐는 듯 이제 기업들은 "땅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다.

법인‧소득세 3년 면제, 이후 2년 50% 감면 등 입주기업에 대한 파격적 세제 혜택이 비결이다. 작년 7월 5공구에 50MW급 SOFC(고체 산화물 연료전지) 생산설비를 완공한 두산퓨얼셀 군산공장에선 내년 5월 양산에 앞선 시운전이 한창이었다. 이 회사 역시 '50년+50년 부지임대 계약' 등 조건을 매력으로 느껴 1,437억 원 투자를 결정했다. 방원조 두산퓨얼셀 상무는 "본사 소재지 익산을 포함해 창원, 용인 등 5군데를 봤는데 기업 입장에서 가장 편하게 지원책을 제시해준 데가 새만금이었다"고 말했다. 이 공장에선 전북 지역 대학과 마이스터고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내년에 80명가량을 고용할 계획이다.

기업들이 원하는 양질의 인력 공급이 가능한 환경 구축이 새만금 산단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주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새만금에 수도권 인력이 가길 기대하는 건 무리다. 현재 김제와 전주, 익산 등지에서 통근버스 7대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생활환경이 갖춰진 군산 등지에 새만금 인력을 위한 기숙사 등을 지원해달라는 목소리가 입주 기업인 사이에 나오는 이유다.

▲두산퓨얼셀 군산공장
 

농지 30%까지 줄였는데…또 "계획 변경"


새만금은 또 한 번 종합계획 변경을 궁리하고 있다. 이미 6차례 변경 과정에서 농지 비중이 30%까지 줄었는데, "기업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산업용지를 대폭 확대하려는 것이다. 30억 원 예산으로 최근 학술/기술용역 업체를 선정해 내년까지 기본계획을 재수립한다는 계획이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보던 식량안보 차원의 개간 농지 새만금은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김경안 새만금청장은 "새만금은 무궁무진한 확장성이 있는 가능성의 땅"이라며 "새만금을 첨단산업단지와 컨벤션 허브, 항만 중심 글로벌 푸드 허브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동북아 경제허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2006년 4월 1일 새만금방조제 완공 당시

새만금은 만경평야와 김제평야의 '만'과 '금'을 따 새로 확장한다는 뜻으로 지은 지명이다. 바다를 메워 없던 땅을 만들어낸다는 건 국토가 비좁은 가난한 국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상상이었을 것이다. 살만 한 나라가 돼 가는 과정에서 품을 수 있는 자신감의 발로였을지 모른다. 경제적 타당성 논란과 지자체 사이 관할권 다툼 등 숱한 부침을 지나 새만금은 오늘도 건설 중이다.